비, 비, 비

꺄아. 오랫만에 블로그 창을 여니 반가운 마음이 물씬. 이라고 해도 거의 3개월 만인가. 허허허.
왠지 모르게 컴퓨터에 손이 안가기도 했고, 막상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땐 비밀번호를 잃어버려서 몇번 시도하다 그만두기를 반복. 게다가 핸드폰 인증도 안되니 귀찮아서 내버려두다 오늘 맘먹고 생각나는 비밀번호를 많이 시도해 본 후 드디어 성공했다. ㅎㅎㅎ

지금 있는 곳은 다람콧 마을. 십년 전 내가 평화롭다며 극찬했던 맥그로드 간즈에서 30분쯤 올라온 곳이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환하게 비치는 아침 햇살과 새소리, 사람들의 염불소리에 잠을 깨 걸어다니고, 해질 무렵엔 달라이 라마가 계시다는 절에 산책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근 십년 만에 온 맥그로드 간즈는........ 더도 덜도 아니고 아.수.라.장.이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ㅜㅜ
리쉬케쉬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가, "거긴 지금 지옥이야 지옥! 절대 있을 곳이 못돼!" 라고 강경하게 말렸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못했는데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5, 6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인도인 관광객들 덕분에 시끄러워지고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공사중이고... 그래 이것까진 괜찮다. 그런데 사람 수가 많아진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어마어마한 양의 자동차들. 길도 좁은데 차가 계속 옆으로 지나가고, 인도인들은 경적 울리는 게 취미인지 끊임없이 귀옆에서 울리는 경적소리. 게스트하우스에서 가까운 식당 한번 나가는 것도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쓰레기 더미들...ㅠㅠ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 덕분인지 환경에 대한 인식이 있는 편이라 예전에는 쓰레기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가게에서도 비닐 봉지를 주지 않는다. 신문지에 싸서 주거나 종이 봉투가 대부분이고 가끔 부직포 쇼핑백에 넣어준다. 물도 싼값에 리필해주는 식당이 많은데 그 이유도 플라스틱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던 이곳인데... 가게에서는 여전히 신문지에 싸서 주고 물도 리필이 되지만...인도인들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거의 없어서인지 골목골목 버려진 쓰레기도 엄청나고, 산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울 풍경마다 보게 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 계곡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젠 내가 좋아하던 일본 식당 근처에도 악취가 나서 별로 안 가고 싶다. 흑흑.

아이들이 있다 보니 근처의 폭포와 계곡에도 종종 놀러가는데, 자연을 즐기기엔 갈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사람들이 계곡물에서 빨래 비누로 빨래를 하는 건 둘째치고, 역시나 곳곳에 버려진 과자 봉지와 쓰레기들. 가장 싫은 건 깨져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 결국 애들 발의 안전을 위해 근처를 청소하면서 쓰레기들을 한아름 모아 들고 나오게 되더라. 뚜리는 그런 나를 보고, "엄마, 도시에서는 쓰레기 안 줍더니 왜 여기서만 쓰레기를 열심히 줍네." 라며 나의 모순을 지적했지만. ㅎㅎㅎㅎ

어쨌든 그리하여, 우리는 맥그로드 간즈에 머무르지 않고 위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머물면서 요가하고 폭포도 놀러가고 산책도 다니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그런데 비가 안 그쳐...........해를 못본지 몇 주 된 것 같다. 예전에 우기에 인도에 있었을 때는, 비가 왔다가도 그치면 해가 쨍쨍하게 뜨고 그러면 또 상쾌해서 참 좋아했는데, 지역이 달라서 그런 건지 '이게 진짜 우기구나'를 아주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햇빛을 본 것도 대략 2주쯤 전 요가홀에서였다. 밖이 환해지면서 해가 뜨기에 "우와, 비가 어제 그렇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환할 건가봐.' 하면서 들떴는데, 요가 끝나고 나왔을 땐 이미 구름낀 하늘로 변해 있었다.
빨래는 하나도 안마르고 공기는 습하고 축축하고, 애들하고 방콕해야 하고, 그런 것도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햇빛을 못보니가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는 것 같다. 예전에 영국 사람들이 해를 못봐서 우울하다는 둥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는 '그런가'했는데 진짜 그런 느낌이다. 햇님은 정말, 정말 소중한 분이었어.  휴. 내일은 부디 햇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기를. ㅎㅎㅎ






by 춤추는 나무 | 2016/07/18 11:19 | 춤추는 나무 | 트랙백 | 덧글(6)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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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덥다 더워.
아침 6시반. 아침부터 텁텁한 공기에 날씨를 확인한다. 현재 기온 30도, 낮 최고 기온 41도. 좌절...ㅜㅜ
누가 리쉬케쉬는 4월까지 괜찮다고 그랬어. 심지어 5월 초반까지도 있을 만하다고 한 사람 누구야...ㅠㅠ
밖에서 놀던 아이들도 덥다고 방안에만 콕 박혀서 갑갑하고 지겹다고 몸부림치고. 
나는 요가하러 가서 선풍기(천장에 달려있는 거) 밑에 앉겠다고 몸부림친다. 선풍기 바람을 쐰다고 시원한 건 아니지만, 느껴지는 열기가 훅훅 숨을 몰아쉬게 만들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온도는 높아도 한국보다 훨씬 건조하기 때문에 견딜 만하다고, 샤워해도 10분 후면 끈적끈적해지는 한국의 여름도 보냈는데 좀더 있어도 되겠다고 생각한게 4월 초.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 바로 그 후부터 더 더워졌다. 또 한가지는, 한국에서는 중간중간 도서관이나 동네 사랑방 카페니 하면서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 들락날락거리며 찬바람을 쐬면서 열기를 식혔고, 지하철이든 버스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추웠으니까,,, 여튼 생각보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많이 맞으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식당을 가도, 게스트하우스 로비에 와도, 요가에 가도, 그냥 다 더워.... 그나마 전기가 잘 나가서 선풍기까지 멈춰.... 그럼 파리들이 내 음식에 달려들어..... 아아.... 냉면먹고 싶다. 비빔면도 먹고 싶다. 콩국수도 먹고 싶다. 아니, 아무 음식이나 다 괜찮다. 시원한 식당이라면.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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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한국에 간다고 냉면과 비빔면과 콩국수를 먹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에서부터 조금씩 아프면서 가끔씩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괴로웠던 내 위장은 이제 매우 섬세 + 가냘픈 아이가 되어서 짜이나 커피를 조금 더 마셔도, 밀가루 음식이 조금만 들어가도 통증을 호소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인도에 와서 파스타 먹고 다 토하고 꼼짝 못하고, 뽀뽀 생일에 케잌 먹고 다음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굶고, 이삼일 과식했다고 다시 드러눕고, 심지어는 겨우 빵 한 조각만 먹어도 속이 쓰리다. 아아, 난 밀가루 귀신인데 말이지. 원래 빵 귀신인 나는, 아침 점심을 다 빵으로 때우는 일도 많았고, 좀 노력하면 채식 라면이나 비빔면 정도를 먹기도 하던 불량한 식생활을 영위했다. 오죽하면 주변 친구들이 "넌 채식이 아니라 탄수화물식을 하는구나." 라던가 "채식이 아니라 그냥 고기를 안 먹는 거 아냐?" 라고 했을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주변의 염려와 건강 조언을 들어도 빵을 끊을 수 없었다고 해도, 조금만 먹어도 쿡쿡 쑤셔오는 위의 통증과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괴로운 시간을 여러번, 그것도 자주 겪다 보니 확실히 겁이 났다. 그래서 빵은 안녕. 케잌도 안녕. 국수도, 라면도 냉면도 안녕. 그래도 쌀로 된 국수는 먹을 수 있을 테니 괜찮아. 다만 다행인 건 생각만큼 금단 현상에 힘들진 않다. 왜냐하면! 여기엔 짜파티가 있으니까. 하하하. 짜파티는 통밀로 반죽해서 둥글게 빚은 납작한 빵인데, 이건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백밀로 된 음식을 먹을 때만 아프다. 그래서 짜파티는 오케이. 그러나 식당에서 먹었던 'brown bread'는 낫 오케이. 먹었는데 위가 쓰렸어. 그래서 난, 부풀리지 않은 빵만 먹을 수 있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베이커리에서 'brwon bread, no white fllour'라고 쓰여진 빵을 두근거리며 먹었더니 아무렇지 않았다. 으음. 그 전의 빵은 백밀이 섞였었나 봐. 허허허. 그러니까 여기서는 괜찮다. 짜파티나 100퍼센트 통밀빵을 쉽게 구할 수 없는 한국에 가서가 문제야. 으음...
그리고 덕분에 과식을 하는 버릇도 아주 쪼오끔 나아졌다. 아프니까...ㅜㅜ 애들이 파스타 먹을 때 못먹는 게 아직도 아쉬워서 흘끔흘끔 쳐다보긴 하지만 한 가닥 이상 맛보는 건 자제자제.... 역시 아픈 게 제일 무섭다. 한국가서 통밀 파스타 사서 잔뜩 먹을 테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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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다람살라로 간다. 내가 인도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 햇살과 새소리와 사람들의 염불외는 소리에 깨어 눈을 뜨면 보이던 히말라야. 고향처럼 마음이 푸근했던 그곳에 간다. 무엇보다 그곳은 이렇게 덥지 않겠지. 음화하핫.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너무너무 기쁘다.
요가는 이곳이 싸고, 거기 가서 또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찾아야 하는 게 귀찮아서 여기서 성실히 해보고자 했지만, 아아, 난 도저히 안되겠어. 요가고 뭐고 날짜만 세고 있다. 비행기는 비싼데다 델리까지 갔다가 다시 타야 하는 거라서 패스. 기차는 역까지 갈 때와 역에서 짐 옮기고 택시 잡고 타고 하는 게 불편해서 패스. 버스는 15시간 앉아서 에어컨 없이 가는 로컬 버스라고 해서 패스. 결국 택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택시 타도 12시간이라고 하니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끼리니 중간중간 쉬어갈 수도 있고, 일단 짐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옮기는 건 도저히 무리니까, 무엇보다 시원한 곳으로 가니까! 이제 오늘까지만 참으면 돼~! 기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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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의 애교는 나이가 들어도 죽지 않고 매일같이 피어난다. 뽀뽀가 지금 일곱 살인 걸 생각하면 신기하다. 서너살, 혹은 다섯살 정도까지가 제일 귀엽고 애교도 많고 예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니 그냥 성격인 것 같다. 뚜리의 애교는 뚜리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동생이 태어나서 너무 빨리 죽어버린 듯해서 미안하고 안타깝다.
그러니까 뽀뽀로 말하자면,
매일 뽀뽀 수십번은 기본이고, 온 얼굴과 귀의 냄새를 맡으며- 처음엔 왜 이러나 했지만 이제 적응했다 - 킁킁거리고, "엄마 냄새가 너무 좋아" 라고 얘기해 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예뻐. 매일매일 더 예뻐져서 어떡해." 라고 하기도 하고, 살포시 웃으면서 "우리 둘다 예쁜 사람이네. 예쁜 사람끼리 만났네."라고도 한다. 또는 "우리 둘다 공주야." 라고도..... -_-;;;
또는 정말 궁금한 듯이 물어본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예뻐졌어?"
그럼 나도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엄마는 뽀뽀를 낳아서 더 예뻐졌지."  사실은 사람들이 둘째 낳고 확 삭았다고 했지만 우리끼리니까. ㅎㅎㅎ
그밖에도 뽀뽀는 어쩐지 아직도 아기 놀이 하기를 좋아해서 "응애응애" 소리내며 온갖 귀여운 척을 다 하며 호응을 요구한다.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30분이고 한시간이고 놀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그럴지도 궁금... 이대로 크면 나중에 애인에게도 엄청난 애교 - 좀 귀찮을 수 있는 - 를 선사하는 게 아닐까. 문득 뚜리와 뽀뽀의 연애가 궁금해진다. 상상하긴 어렵지만 스타일도 많이 다르겠지. 왠지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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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아침 7시. 선풍기 밑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벌써 더워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짐도 싸고, 택시도 다시 확인하고, 알고 지내던 한국 언니들에게 인사도 하러 가야지.
모지의 사트상도 매년 열리고, 좋은 요가 선생님이 있어서 다시 오고 싶긴 하지만 애들이 놀기에 그닥 편안한 곳이 아니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십년 쯤 후에 올 수 있으려나. 어쨌든 나름 좋았던 리쉬케쉬, 안녕.


by 춤추는 나무 | 2016/04/21 10:37 | 춤추는 나무 | 트랙백 | 덧글(10)

리쉬케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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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를 떠나 리쉬케쉬에 왔다. 온지 벌써 한달반이 지났다. 처음 와서는 당황했다. 분명 고아보다 물가가 싸다고 들었는데... 방값이 비싸다. ㅜㅜ 밥값도 조금 더 싸고 요가 수업 비용은 싸지만, 게스트하우스 비용으로 상쇄...하기엔 역시 아쉽다. 고아에서는 거실에 부엌까지 있는 곳에 살다가 그보다 비싼 값에 방 한칸으로 쪼그라들고 보니 좀... 그래도 다행히 게스트하우스 앞 마당이 넓어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니고, 언제나 그렇듯이 게스트하우스 직원들과 친해져서 부엌에 들락날락 거리며 이것저것 얻어먹고, 같이 만들고, 서빙도 한다. 가끔은 매니저 자리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뽀뽀의 모습을 보노라면 웃기기도 하고, 아무래도 게스트하우스를 차려야 하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라면 역시 고아가 좋은 것 같다. 해질 무렵의 바닷가는 정말 근사했고, 그 풍경 속에 드럼 연주하는 사람들, 막대기를 휘두르며 무술 비스무레한 걸 연습하는 사람들, 요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발가벗고 기어다니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들.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많이 봐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또 아이들은 귀여우니까..오동통한 엉덩이들이 깜찍하고 한편으로는 자유로워보여 즐거웠다.  그리고 나중에는 뽀뽀도 고무되었는지 다 벗고 뛰어다녔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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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리쉬케쉬는 전혀 계획에 없었건만, 우연히 고아에서 만난 친구가 리쉬케쉬에서 열리는 한 스승의 사트상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같이 사람들이 모여 질문하고 스승이 답해준다) 정보를 알려준 순간, 다음 목적지는 이곳이 되었다. 그 스승이라는 분에 대해 아는 것도 전혀 없었고, 그저 몇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본게 전부였는데, 그때의 느낌이 워낙 좋아서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그래? 그럼 나도 그때 가지 뭐." 하고 결정해버렸던 것이다. 역시 계획따윈 소용없어. 몇초만에 즉흥적으로 바뀌는 일정 따위... -_-;;;

그리하여 두근두근 하며 이곳에 왔는데, 너무 추워!!! 마침 도착하는 날 비바람이 부는데 어찌나 추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누구 주거나 버릴까 했던 얇은 패딩에 다시 후드 점퍼를 뒤집어 쓰고, 레깅스 위에 다시 바지 입고 덜덜 떨었다. '괜히 왔나' 하면서 약간의 후회도 느껴졌는데 다행히 그 다음날부터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그래도 쾌적한 날씨가 이어져서 다행스럽게 적응했다. 그리고 온지 한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덥다..... 아침엔 약간 선선하지만 오전 10시쯤 되면 벌써 햇볕이 뜨겁고, 한낮에는 꽤나 덥다.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대로 그 스승(이름은 Mooji)의 사트상에도 여러번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받은 느낌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절 말을 붙이자면 길게 쓸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정확하지 않은 느낌. 다만 '이런 거였어? 스승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그 많은 사람들이 - 딱 봐도 천명은 넘어 보였고, 나중엔 그 배쯤으로 늘어났다 - 몰려드는 이유, 혹은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또는 눈 한번 마주치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이, 아무 연결고리 없는 타인에게 한 순간 마주친 것만으로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행복감, 충만함, 깊은 감동, 또는 격렬한 오열을 끌어낼 수 있는 걸까. 이런 게 그토록 말로만 듣던 '무조건적이고 차별없는 사랑의 위대한 힘'인 걸까? 여전히 나는 알 수 없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또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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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트상은 끝났고 요즘은 요가를 다니고 있다. 얼떨결에 남편 친구의 권유로 고아에서 teacher training을 하게 된 덕분에 요가가 쪼오끔 좋아졌다. (사실 고아에서 멋진 선생님의 열정에 홀딱 넘어갔을 때는 엄청 좋다고 생각했는데, 약발 끝나고 시간 지나니까 다시 게을러지면서 나의 열정도 다시 사그라들었다. 허허허-) 처음에는 나같이 뻣뻣한 왕초보가 과연 트레이닝을 해도 되는가 - 과연 따라갈 수 있는가 - 에 대해 심각한 의심은 들었지만, 그 남편 친구의 선생님이 '다 괜찮다'고 용기(?)를 주어서 참여했다. 물론 나는 많은 요가 동작을 따라할 수 없었고, 그쪽도 참여자 한명 늘리는 게 큰 이익이 되니까 권유한 것 같은 데다가, 운영은 엉성했고 (선생님 한분은 집에서 느긋하게 걸어 오신다며 30분 이상 수업에 지각하기도 했음.. -_-;;), 알고 보니 가격조차도 다른 곳보다 훨 비싸서(친구라고 깎아준 게 다른 곳의 두 배 가까운 가격이었지.. ㅠㅠ )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요가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난 요가를 좋아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힘들어서였다. 허리도 아프고 하고 나면 개운하니까 억지로 가긴 했지만, 집중은 못하고 아파서 절절 매며 한 시간 언제 가나 재기 일쑤였다. 그렇다 보니 겨우 일주일에 두번 가는 동사무소 요가조차 꾸준히 하기 힘들었다. 한두달 가다가 서너달 쉬고 이런 수준? 그런 내가 트레이닝이라니 웃기지만, 하면서 즐거웠다. 무엇보다 요가 철학과 아나토미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점심 먹고 앉아서 강의 듣는 그 시간이 하루의 비타민인 양 행복하게 기다렸다. 첫 수업이 끝나고 한 친구가 "또 언제 수업하러 오시나요?" 하고 묻고, 그 선생님이 "당분간 매일 옵니다." 라고 대답했을 때 우리 모두는 기쁜 표정이었다. 단지 이론을 배울 뿐인데, 몸의 근육과 신경과 시스템을 배울 뿐인데, 어떻게 그것들이 요가와 그리고 삶과 딱딱 맞물려 떨어지는지, 우리가 묻는 질문마다 어쩜 저렇게 명쾌한 답을 해줄 수 있는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 수업 후의 아사나(동작) 수업에서는 시간만 재던 내가 '벌써 끝났나' 할 만큼 몰입이 깊어지곤 했다.
예전에 내가 요가를 나와 안맞는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요가가 반복적이고 규칙적이고 꾸준한 - 다시 말해서 좀 지겨운 - 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요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첫 문장으로 "Yoga is discipline."이라면서 사람은 누구나 훈련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순간, '아, 그렇구나. 사람에게는 훈련이 필요하구나. 나도 요가를 꼭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이 확 바뀌었다. 심지어 두근두근하며 '평생 할 거야.'라고도 생각은 했지만, 위에서도 썼다시피 지금은 사그라들어서 미적지근하다. 다만, 살아온 평생 주로 게으르게 늘어져 있던, 편한 것만 좋아하고 귀찮은 건 질색하는 나에게 요가가 좋은 훈련이자 단련이라는 걸 깨닫고 가급적 꾸준히 하고 있다. 덤으로 심하게 비틀어진 내 몸 - 틀어져서 높낮이가 다른 척추, 기울어져서 한쪽은 짧고 다른 한쪽은 긴 바지와 티셔츠, 입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티셔츠와 왼쪽으로 돌아가는 바지 등 - 으로 인해 아픈 허리와 무릎과 어깨와 종종 시큰거리는 오른쪽 발목과 손목 (써놓고 보니 안 아픈 데가 어디냐...-_-;) 이 낫는다면 참으로 좋겠다. 내가 제일 못따라가는 듯한 수업에서,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 내 몸에 조급한 마음이 들다가도, "요가로 전부 다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또한, 삶은 그저 편한 걸 추구하는 게 아니라던 수업을 기억하며, 여전히 내게는 답답하고 어려운 요가 수업에 오늘도 갈 것이다.

처음 인도에 온 것, 고아에 간 것, 리쉬케쉬에 온 것, 어느 것 하나 예상되로 된 건 없다. 하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 나에게 왔다는 생각에 감사한다. 남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나 스스로도 전혀 모르겠지만, 올해는 일단 이대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길로 나아가겠지. 2016년의 끝에 내가 어디에 서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이어지는 내용

by 춤추는 나무 | 2016/04/13 11:26 | 트랙백 | 덧글(8)

두달에 한번 오는 근황.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블로그를 여니 반가운 마음이 흠뻑 올라온다.
조금은 한국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엔 아플 때 빼고는 한국에 오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 같은 거 한번도 안해봤는데, 이번엔 신기하게도 한국 생각이 종종 났다. 수다떨던 동네 친구들, 매일같이 인사하며 지내던 각종 가게들, 뚜리 뽀뽀 친구들의 엄마들, 그리고 떡볶이. ㅋㅋㅋ 이곳에서 온 가족이 돌아가며 많이 아팠던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다들 멀쩡하지만, 12월초쯤에 계산해 보니 가족 중 누군가 아팠던 기간이 총 한달이 넘는 걸 계산하고는 스스로도 경악했었다. 아이들 둘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라 할 만큼 아팠고, 나는 어쩐 일인지 이동할 때마다 '아,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싶을 만큼 아픈 게 겹쳐서 이대로 징크스가 된 게 아닌가 두려울 정도였다. 이젠 왠지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가 무서워...ㅠㅠ


구자라트는, 참 좋았다. 예전에 두세번 갔을 때는 일주일 넘기기가 힘겨워서 시간을 세며 괴로워했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편안해서 뒹굴거리며 실컷 쉬었다. 물론 환경이 예전보다 훨 나아지긴 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생겼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다 냉장고까지 있어서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던지! 음식과 각종 위생을 비롯해 불편함 - 이라고 쓰지만, 다른 한국인이나 '엄마들'이 들으면 내가 당장 뛰쳐나오지 않은 것에 경악할 수준인 - 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생각외로 잘 적응하고, 신나게 놀고, 큰아빠, 큰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에 감사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손하나 까딱 안하고 늘어져 있으면서 '이런 게 친정에 온 기분인가' 와 같은 생각을 말 안통하는 시댁에서 하고 있었을 정도니 어지간히 편안하게 지내긴 했다.


두달간의 구자라트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고아에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크리스마스 파티로 유명한 곳인데, 원래 바다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래도 철썩이는 파도를 보는 건 즐겁고, 애들도 다행히 모래를 헤집으며 잘 놀아서 기쁘다. 크리스마스에는 지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를 한다고 해서 저녁 먹고 홀에 모였는데 - 그래봤자 10명 남짓 - 음악 틀어놓고 춤추며 놀았다. 뚜리 뽀뽀 말고도 두명의 어린 아이들이 홀을 뛰어다니며 신나하고, 뚜리와 뽀뽀는 정체불명의 동작과 표정을 선보이며 내가 주저앉아 땅을 치며 웃게 만들었다. 달이 환하게 뜬 밤, 아이들이 춤추는 걸 - 그걸 과연 춤이라 할 수 있다면 - 보면서 행복하다 생각했다. 아주아주 행복하다고. 아이들이 춤추는 거, 한국에서도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춤추면 되는 건데도, 무언가 다르게 느껴져서, 가슴이 벅찼다. 아주 많은 걸 내놓고 왔지만, 시댁에서도, 이곳에서도, 무언가 아주 소중한 걸 채웠다는 기분이 들어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게 느껴진다.


온지 벌써 3개월이 훌쩍 넘었고, 2016년이다.
2015년에는 칼을 뽑았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2016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소중하고 벅찬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나도 모르게 믿게 된다.


늦었지만,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아요!
2016년, 다들 행복하고, 평화롭고, 건강하기를.



by 춤추는 나무 | 2016/01/03 20:40 | 춤추는 나무 | 트랙백 | 덧글(13)

뚜리 골골

조용한 저녁 8시. 뚜리는 6시에 잠들었고, 뽀뽀는 옥상에서 뛰어다니고 놀다가 친구들이 가자 그제야 미적미적 밥을 먹었다. 그리고 옆에 누워 다독이며 재우니 지금 시각이다. 이제 내 시간이 생겼네, 이면 좋겠으나 나도 이미 졸리다.
뚜리는 어제도 6시에 잠들었다. 그래놓고 새벽 세시 오십분에 일어나 다 토했다. 내가 애 하루이틀 열나고 아픈 걸로 쪼는 사람이 아닌데, 삼일째에도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니 좀 불안하기도 하다. 하루종일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는 뚜리는 안쓰럽고, 나는 종일 뚜리 배 마사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근데 마사지도 살이 좀 있어야지, 원래도 마른 애가 밥을 못먹으니 배는 움푹 파이고 갈비뼈는 드러나고, 고행길을 걸었던 부처님도 아니고 이게 뭐냐 뚜리야. ㅠㅠ

사흘 동안 뚜리가 먹은 음식은 이렇다.
1일. 수박 (설사해서 주기 싫었는데 먹고 싶다고 어찌나 짜증내고 조르는지 그냥 줬다.ㅡㅡ), 된장국 국물만 한 그릇, 코코넛 워터 두 컵. 그리고 어마어마한 설사...
2일. 물.
3일. 수박 국물 약간. (맹물을 너무 안마셔서 조금 줬더니 홀짝홀짝 잘 받아먹더라. )

오늘은 설사 안하는거 보니 그건 멈춘 것 같은데 계속 배가 아프다니 방심할 수가 없다. 똥이라도 시원하게 쌌으면 좋겠는데 종일 배를 문질렀건만 왜 효과가 없니... 내 손은 약손이 되기엔 모성애가 너무 얄팍한가 아님 에너지가 달리는 건가. 그 와중에 형수님과 아주버니는 '이 엄마가 애를 잡는 거 아닌가.'싶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자꾸 조금이라도 먹이라고 채근한다. 그치만 아플 때 억지로 먹이는 건 아닌 듯하여 나는 안먹겠다는 뚜리를 내버려 두는데 왠지 조금씩 가시방석이 되는 기분이야...이런 얘기를 카톡으로 했더니 이런 답변이 왔다. "세계 공통이구나.. 아픈 애 굶긴다고 박해받는 건.."
박해라는 표현이 웃겨서 피식 웃었지만 정말 그렇다. 애가 안먹으면 너무나 염려하고 어떻게든 먹이려 하고...그렇지만 내가 강제로 안먹이는 게 아니란 말이다. 배 아파서 못먹겠다는데 괜히 먹였다가 더 탈나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뚜리랑 짜고 거짓말을 했다
바나나 먹었다고. ㅡㅡ;;;

병원 이야기도 계속 하셔서 내일 봐서 가자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우리 애들은 보통 주말 끼고 아파서 월욜엔 이미 나았거나 회복세인 경우가 대부분. 막상 가도 의사가 "이미 가장 심한 시기는 지났고 낫고 있네요."라고 하고, 나는 '역시 그렇군'하며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뚜리도 내일은 낫겠지. 나을 거야. 조금씩 먹을 수도 있을 거야. 부디 그러하기를.


잠든 뚜리 옆에서 이전에 써놓은 메모장을 보았다. 어린이집 다니던 때의 일인데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어느 날, 뚜리가 말했다.
뚜리 : 엄마, 오늘 내 가방에 십원 있어.
나 : 그래? 어떻게?
뚜리 : 정민이가 십원 줬어.
나 : 왜?
뚜리 : 자기랑 놀아주면 십원 준다고 해서.
나 : 그전엔 안 놀고 있었어?
뚜리 : 그전에 계속 같이 놀아서 이제 안 논다고 했더니 십원 준다고 했어. 그래서 같이 놀았어.

이때 푸핫 하고 폭소했던 기억이 난다. 십원주고 놀자는 애도 웃기고 거기에 호응한 뚜리도 웃긴다. 백원도 아니고 십원에 넘어가는 남자라니 너무 싼 거 아냐. ㅋㅋ 애들이 대화하는 걸 상상하니 다시금 귀엽고 재밌다.


아아, 뚜리야. 얼른 낫자.
눈을 반짝이며 떠드는 네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오늘은 뚜리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들어야겠다.

by 춤추는 나무 | 2015/11/02 00:19 | 뚜리와 함께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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